※ 본 글은 2025년 7월 4일 방송된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의 김영대 평론가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생각에서 마음으로'가 재구성하여 정리한 내용을 에세이로 작성한 것입니다.
K팝이 다시 뜨겁다, 그런데 모양이 다르다
2025년, 새로운 정치 질서가 정착되는 와중에도 K팝은 여전히 글로벌 대중문화의 최전선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가장 뜨거운 K팝 콘텐츠는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온 무대 위 아이돌 그룹이 아닙니다. 바로 미국 메이저 자본이 제작한 애니메이션 입니다. 이 작품은 SNS, 유튜브 쇼츠, OTT 플랫폼을 통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으며, 그 OST는 빌보드 차트에 진입하는 성과까지 거두었습니다. 이처럼 K팝은 새로운 형태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더 이상 K팝은 '한국 아이돌이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장르'로 정의되기 어렵습니다. 장르, 플랫폼, 정체성의 경계가 흐려지는 지금,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합니다. “K팝은 어디까지가 K팝인가?“
‘K팝 데몬 헌터스’ —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전장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단순한 애니메이션이 아닙니다. 이 작품은 철저하게 한국의 정서와 문화 코드를 녹여낸 글로벌형 K팝 서브컬처 콘텐츠입니다. 서울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한국 전통 무기(청룡언월도, 월도 등), 전통 음식(떡볶이, 김밥, 국밥), 한국어 발음의 정확성까지 고증된 콘텐츠로, 시청자에게 “이건 분명히 한국이다”라는 확신을 줍니다. 내용은 단순한 히어로물입니다. 여성 3인조 아이돌 그룹이 악령이 된 남성 아이돌 ‘사자보이스’를 상대로 전투를 벌이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팬덤 문화, 서브컬처, K팝 아이돌 세계의 복잡한 층위가 녹아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작품이 K팝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이들에게도 쉽게 접근 가능한 입문 콘텐츠로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OST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 이 작품의 가상 캐릭터들이 부른 곡이 빌보드 차트에 오를 만큼의 완성도를 자랑하며, 버추얼 아이돌의 새로운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팬덤 확장이 아니라, K팝 산업의 또 다른 축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K팝의 현지화 — 글로벌화인가, 기술의 수출인가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가 보여준 문화적 확장은 이제 K팝 기획 시스템 자체의 수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이브의 ‘캣츠아이’, JYP의 ‘NiziU’와 ‘VCHA’, SM의 영국 보이그룹 ‘디어 앨리스’는 모두 현지 인재로 구성된 현지화 K팝 프로젝트입니다. 이들은 각국에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되었고, 기획·트레이닝은 한국의 엔터테인먼트사가 담당하였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한 ‘한국 아이돌의 해외 진출’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K팝의 시스템’이 해외 현지에서 현지 인력과 결합해 완성된다는 점에서, 자동차 공장이 해외에 세워져 현지 소비자를 겨냥해 생산되는 방식과 유사합니다. 이들 그룹은 한국인이 없거나 한 명만 포함되어 있음에도, 팬과 시장에서는 K팝 그룹으로 인식되기도 하고, 때로는 이질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이 현상은 K팝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방증이지만, 동시에 “K팝의 정체성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한국 문화와 시스템의 본질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과연 K팝인가, 아니면 ‘K팝 스타일의 팝’에 불과한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유사 K팝의 부상 — 일본 XG, 태국, 유럽 팀들
더 나아가 한국 엔터테인먼트사가 직접 제작하지 않은 ‘유사 K팝’도 부상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걸그룹 XG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들은 스스로 K팝 그룹이라 하지 않지만, 음악 스타일, 안무, 뮤직비디오 구성 등 거의 모든 요소가 K팝과 유사합니다. 일부 제작진이 한국 출신이라는 점에서도 K팝의 기술적 영향이 짙게 묻어납니다. 이러한 ‘K팝 유사체’들은 마치 태권도 사범이 해외에서 도장을 열어 전파하는 것처럼, K팝의 기술과 감수성이 세계에 퍼진 결과입니다. 하지만 이 현상이 계속된다면, 오리지널 K팝과 유사 K팝 사이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오히려 후자가 더 보편적인 음악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습니다. 결국 K팝은 세계화를 통해 경쟁자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는 자랑스러운 동시에, 산업적 주도권과 문화적 원천성을 지켜내야 한다는 숙제를 함께 안겨줍니다.
BTS와 블랙핑크의 현재 — 전통의 명암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대표 K팝 그룹인 BTS와 블랙핑크의 행보와도 비교됩니다. 현재 두 그룹 모두 팀 활동은 잠시 멈춘 상태입니다. BTS는 군 복무를 마쳤지만, 완전체 활동은 준비 중이며 시점은 불확실합니다. 블랙핑크 역시 해체하지는 않았지만, 멤버들은 각자 독자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니의 경우 솔로 활동을 통해 기존의 K팝 감수성보다는 미국 팝스타와 유사한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K팝 아이돌’에서 ‘글로벌 솔로 아티스트’로의 전환을 상징합니다. 팬들의 호불호는 갈릴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K팝이 전통적 모델만으로는 미래를 견인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기존 그룹의 잠정적 공백은 새로운 유형의 K팝 콘텐츠와 프로젝트가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경계의 시대, K팝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오늘날의 K팝은 과거보다 훨씬 넓은 스펙트럼을 가집니다. 아이돌 그룹은 더 이상 무대 위에만 존재하지 않으며, 애니메이션, 가상 아이돌, 현지화 프로젝트, 유사 K팝 그룹까지 포함하는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정체성과 경계는 흐려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K팝’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재구성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단지 국적이나 언어, 구성원으로 K팝을 정의할 수 없는 시대가 왔습니다. 대신, 무엇이 K팝의 본질이고, 우리가 지켜야 할 ‘핵심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진정한 K팝은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끊임없는 혁신과 진정성을 바탕으로 한 감성의 교류입니다. 이 본질을 지켜가며, 기술과 콘텐츠는 자유롭게 확장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확장을 통해서만 K팝은 새로운 세계 속에서도 여전히 ‘K팝’으로 존재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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