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의 행사
매년 11월 넷째 주 목요일, 미국 전역은 가족 단위의 축제 분위기로 가득 찹니다. 넉넉한 식탁 위에 올려진 황금빛 칠면조와 옥수수, 크랜베리 소스, 호박 파이는 단지 음식이 아니라 조상들의 개척 정신과 생존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백악관 앞마당에서는 대통령이 생중계로 칠면조 두 마리를 사면하는 의식을 거행하며, '자비와 감사의 정신'을 상징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은 언뜻 보기엔 미국인의 정체성과 전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추수감사절(Thanksgiving)'이 지닌 기원의 이면에는 오래도록 침묵당한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따뜻한 감사를 나누는 이 날은, 사실 누군가에게는 잃어버린 조국과 학살의 기억을 떠올리는 날이기도 합니다.
감사의 날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추수감사절의 기원은 16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종교적 박해를 피해 영국을 떠난 청교도들은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신대륙을 향해 항해하였습니다. 당초 목적지는 버지니아 지역이었지만, 항로가 빗나가 매사추세츠 지역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혹독한 겨울이 시작된 11월이었고, 이주민들은 식량과 연료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결국 첫 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탑승자 절반 이상이 사망하는 비극을 겪게 됩니다. 그들을 구한 이들은 바로 완파노아그(Wampanoag) 족이라는 원주민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은 옥수수 경작법과 저장법, 사냥법 등을 가르쳐 주며 생존을 도왔고, 청교도들은 그 덕에 이듬해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에 감사의 마음으로 1621년, 원주민들을 초청하여 3일간 잔치를 벌였고, 이것이 추수감사절의 시초로 기록됩니다. 칠면조, 옥수수, 호박 등이 이 날의 상징이 된 이유도 이 시기 처음 수확한 작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미국 초등 교과서에 등장할 정도로 잘 알려져 있고, '감사의 본보기'로 오랫동안 회자되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 이후의 이야기는 어떠했을까요? 원주민과 이주민이 평화롭게 공존한 이 순간은 역사의 한 조각일 뿐, 전체 맥락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감사의 끝, 배신의 시작
1621년의 평화로운 연회 이후, 영국계 이주민들은 점차 북미에 정착지를 넓혀 갔습니다. 50년이 지나면서, 식민지 규모는 확장되었고 이로 인해 원주민과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1675년, 이주민과 원주민 간의 긴장이 극에 달하면서 '필립 왕 전쟁(King Philip’s War)'이 발발합니다. 완파노아그 족 추장 메타콤(Metacom)은 '필립 왕'이라는 영어 이름으로 불렸으며, 이 전쟁은 원주민의 최후 저항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이주민들은 마을을 불태우고, 원주민 전사들을 사살하며 공동체를 파괴했습니다. 살아남은 여성과 아이들은 서인도 제도(카리브 해의 식민지 지역)로 보내져 노예가 되었고, 이들은 다시는 고향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바로 이 완파노아그 족은, 그토록 감사했던 이주민을 도와줬던 공동체였습니다. 미국의 공식 역사에서는 이 장면을 자주 생략하거나 축소하지만, 오늘날 원주민 후손들 사이에서는 그날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강제이주의 길, ‘눈물의 여정’
19세기 들어 미국 정부는 본격적으로 원주민들의 영토를 몰아내기 시작합니다. 1830년 제정된 '인디언 이주법(Indian Removal Act)'은 동부 지역에 거주하던 원주민들을 미시시피 강 서쪽으로 강제로 이주시키는 법률이었습니다. 대표적인 피해자는 체로키(Cherokee) 족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농업과 문자, 헌법까지 갖춘 고도로 조직화된 공동체였지만, 백인 농장주들의 탐욕은 그들의 문명화 여부와 무관했습니다. 1838년부터 1839년까지 체로키족은 약 4000km에 이르는 도보 이주를 강요받습니다. 이 과정에서 추위와 질병, 기아로 수천 명이 사망했으며, 이는 '눈물의 여정(Trail of Tears)'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집니다. 더욱 비극적인 사실은, 이 강제이주 도중 체로키족이 부른 찬송가가 바로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였다는 점입니다. 이미 기독교로 개종한 그들이, 눈물과 죽음의 행군 속에서 기도했던 노래는 백인들이 즐겨 부르던 찬송가였습니다. 감사의 찬송이 가장 잔인한 순간에 울려 퍼졌던 셈입니다.
존재는 사라지고 이름만 남은
오늘날 미국 군의 상징적 무기 중에는 원주민 부족 이름을 차용한 경우가 많습니다. 아파치 헬기, 토마호크 미사일, 체로키 SUV 등이 대표적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이름들은 과거 미국 정부와 군대에 의해 학살당하거나 쫓겨난 부족들이었습니다. 정작 그들의 언어, 문화, 정신은 지워졌지만, 그 이름만은 무기와 상업 제품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이는 마치 존재의 실체를 말소한 채 이름만 전유하는 또 하나의 식민 행위로 보일 수 있습니다. 더욱 상징적인 사례는 '마운트 러시모어(Mount Rushmore)'입니다. 이 조각상은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비롯한 네 명의 대통령 얼굴을 남긴 거대한 산악 조각으로, 미국의 민주주의와 영토 확장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이 산은 원래 수우(Sioux) 족의 성지였습니다. 정부는 이 성지를 접수하고, 그 위에 자신들의 우상을 새겼습니다. 이에 반해 수우족은 자신들의 영웅 '미친 말(Crazy Horse)'의 거대한 석상을 조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조각은 여전히 완공되지 못했으며, 원주민들이 자체적으로 기금을 모아 손수 제작하고 있습니다. 그 조각상은 단지 돌덩이가 아니라, 역사 왜곡에 맞서는 침묵의 저항이며, 잊히지 않으려는 몸부림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추수감사절은 인간이 자연과 타인에게 감사를 전하는 의미 있는 날입니다. 그러나 이 날이 단지 칠면조를 구워 먹고 쇼핑 세일을 기다리는 행사로만 소비된다면, 그 정신은 왜곡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이 날의 기원이 누군가의 환대와 누군가의 배신으로 얽혀 있는 역사라면, 우리는 반드시 그 전후 맥락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청교도들이 첫 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원주민 덕분이었고, 그로부터 50년 뒤 원주민은 학살당했습니다. 체로키 족은 기독교에 개종했음에도 불구하고 땅에서 쫓겨났고, 그들의 노래는 눈물 속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수우 족은 영토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웠지만, 결국 성지에 백인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졌습니다. 이 모든 역사는 미국의 정체성 속에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어느 한 쪽의 승리 이야기가 아닙니다. 감사의 날에는, 반드시 그날의 음식을 처음 나눠준 이들의 이름과, 이후에 사라진 그들의 역사를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전하는 '감사'는 진정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칠면조는 날지 못하는 새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날아가 버려선 안 되는 것입니다. 감춰진 이름들을 꺼내어 말할 수 있을 때, 추수감사절은 단지 과거의 축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되돌아보는 거울이 될 수 있습니다.
'잠시 멈춤, 생각이 시작되는 곳'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어준 겸공) 김영대가 말하다 - K팝 데몬 헌터스 와 현지화 아이돌이 보여주는 경계의 확장 (5) | 2025.07.06 |
---|---|
위화도 회군 - 고려의 몰락과 조선의 서막 (2) | 2025.07.06 |
행안부 발표 - 민생회복 소비쿠폰 신청 시작! 첫주 요일별 신청 출생년도 끝자리 (3) | 2025.07.05 |
KPOP 데몬헌터스 리뷰, 한국 문화가 세계를 감싸는 순간 (8) | 2025.07.04 |
2025 인공지능(AI) 트렌드 - 대중화, 빅테크 움직임, 반도체 기업 그리고 한국의 대응 (2) | 2025.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