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홍수의 정치적 배경
2025년 여름, 미국 텍사스 주를 강타한 기록적인 홍수는 단순한 기상이변으로 치부되기에는 너무도 구조적이며, 또 너무도 예고된 재난이었습니다. 사망자는 80명을 넘었고, 160명이 실종 상태로 남아 있으며, 수만 명의 주민이 대피소로 내몰렸습니다. 미국은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재난 대응 시스템을 갖춘 국가로 평가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는 재난 예측, 대응, 구조, 복구 어느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피해의 규모와 혼란만큼이나 미국 사회에 충격을 준 것은, 이 홍수가 ‘전혀 예보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수십 년간 위성을 통한 정밀 예보에 익숙한 미국 시민들은, 대형 홍수가 사전 경고 없이 발생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남긴 정치적 유산과, 그것이 빚어낸 정책적 공백이 있었습니다.
예측 실패의 원인: 깎인 예산과 무너진 인프라
이번 홍수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재난 경보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미국 기상청과 연방재난관리청(FEMA)은 수십 년간 고도화된 시스템을 통해 태풍과 폭우, 산불 등 자연재해를 사전에 예보하고 대응해왔습니다. 그런데 텍사스의 이번 홍수는 시민들에게 아무런 사전 통보 없이 벌어졌고, 결과적으로 수십 명의 인명을 앗아갔습니다. 이 예측 실패의 배경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있습니다. 트럼프는 재임 시절 기상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했습니다. 기상 위성 운영 예산, 슈퍼컴퓨터 업그레이드 예산, 관련 연구 개발 지원금이 줄줄이 줄었고, 기상 예보관과 분석 인력의 구조조정도 단행되었습니다. 그는 기후 위기를 '중국이 만들어낸 사기극'이라고 말했으며, 과학 기반 예산을 정치적 ‘낭비’로 간주했습니다. 또한 트럼프는 FEMA를 폐지하거나 각 주로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반복해왔습니다. 그 결과 연방 차원의 통합적 재난 대응 시스템은 약화되었고, 위기 시 국가적 대응 능력은 현저히 낮아졌습니다. 트럼프는 '각 주가 자신의 일은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논리로 연방정부의 역할을 축소했지만, 정작 이번과 같은 초대형 재난에서는 그 구조 자체가 비현실적임이 드러났습니다. 결국 시스템은 붕괴되었고, 과학은 무시당했으며, 시민들은 정보 없이 그대로 재난에 노출되었습니다. 이는 정책이 생명을 어떻게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기후 위기 부정과 과학의 정치화
트럼프의 기후 인식은 그의 전반적인 정책 방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는 대통령 재임 중 내내 기후 변화에 대한 과학적 경고를 ‘허위’, ‘조작된 통계’, ‘음모’로 몰아붙였습니다. 파리기후협약 탈퇴는 그의 대표적인 정치적 상징이었고,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와 탄소 배출 감축 목표 폐지는 그의 자랑거리였습니다. 이러한 기후 위기 부정론은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닙니다. 그것은 정책 결정과 예산 배분, 제도 설계에 구체적으로 반영되었고, 재난 발생의 위험성을 키우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텍사스와 같은 남부 내륙 지역은 전통적으로 기후위기와 무관하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의 기후 변화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습니다. 건조한 사막 지대라 여겨졌던 텍사스에 폭우가 쏟아지고, 대규모 홍수가 발생하는 것은 명백히 기후 위기의 신호입니다. 그러나 트럼프는 기후 위기를 정치화하고, 이를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했습니다. 과학자들의 경고는 ‘좌파의 사기극’으로 매도되었고, 관련 정책은 ‘국가 경제를 해치는 규제’로 취급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기후 위기는 정치의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었고, 그 대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었습니다.
책임 회피와 정치적 이미지 관리
재난은 정치인의 진정한 실력을 평가받는 무대입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번에도 전형적인 ‘회피의 정치’를 선택했습니다. 텍사스에 홍수가 발생하던 시점, 그는 가족과 함께 골프장을 방문하고 있었으며, 사태의 심각성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이후에도 한동안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국 “이것은 100년에 한 번 오는 재난이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는 입장을 발표하며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사전 예보 실패, 구조 인력 부족, FEMA의 출동 지연 등 모든 문제에 대해 명확한 해명이나 사과는 없었습니다. 대신 그는 “남은 인력들이 잘하고 있다”는 낙관적인 메시지를 반복하며, 위기를 덮으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런 모습은 2005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허리케인 카트리나 대응 실패를 떠올리게 합니다. 당시 부시 행정부의 무능한 대응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정치적 타격 중 하나로 기록되었으며, 결국 민주당의 정권 교체를 이끌었습니다. 이번 텍사스 홍수 또한 같은 경로를 밟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텍사스가 공화당의 대표적 ‘레드 스테이트’라는 점입니다. 트럼프는 자신의 정치적 고향이라 할 수 있는 텍사스에서조차 여론의 역풍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는 공화당 내부의 균열을 야기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재난 앞에서는 진영 논리가 통하지 않으며, 책임을 회피하는 정치인은 결국 신뢰를 잃게 됩니다.
정치적 무능이 만든 비극
2025년 텍사스 홍수는 자연재해인 동시에, 명백한 ‘정책 실패’이기도 합니다. 예측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고, 경고가 없었으며, 구조도 지체되었습니다. 그 근본에는 과학을 무시한 정치, 예산을 삭감한 정치, 책임을 회피한 정치가 있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은 재난 대응을 위한 국가의 능력을 무너뜨렸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게 되었습니다.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며, 정치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리고 이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는 단순한 행정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인의 도덕성과 리더십의 시험대입니다. 국민은 위기 속에서 정치인을 평가합니다. 단지 공약을 잘 외우는가, 카메라 앞에서 말을 잘하는가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실질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왔는가, 위기 속에서 책임을 지는가가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트럼프는 이번 텍사스 홍수를 통해 또 한 번 자신의 정치적 한계를 드러냈으며, 이는 곧 미국 보수 정치의 신뢰 위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기후는 정치적 선택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정책의 무능은 곧 생명에 대한 무관심이며, 그 대가는 재난이라는 이름으로 되돌아옵니다. 우리는 이제 재난을 정치의 중심 의제로 올려야 하며, 과학과 공공성을 회복하는 정치가 절실한 시점에 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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