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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투 열풍과 가상화폐 투자 현실 – 부채로 미래를 사는 2030의 위험한 선택

by 생각에서 마음으로 2025.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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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투 열풍과 가상화폐 투자 현실 – 부채로 미래를 사는 2030의 위험한 선택

가상이라는 이름의 희망

2020년대 초반, 수많은 이들이 빚을 내어 가상화폐에 투자했습니다. 이른바 '빚투'. 단어는 가볍지만, 그 무게는 인생을 통째로 흔들 수 있을 만큼 묵직했습니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알트코인, 디파이… 이름은 달랐지만 바람은 같았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불안, “이 정도 수익률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조급함이 사람들을 이끌었습니다. 그들은 미래에서 차용한 희망을 현재의 투기 위에 쌓아 올렸습니다. 그러나 그 희망은 실체가 없었습니다. 가격은 급등했지만, 곧바로 급락했습니다. 수익을 거둔 사람은 극히 일부였고, 대부분은 그 희망의 대가를 빚으로 감당해야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현상이 단순히 개인의 탐욕이나 판단 착오로만 환원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왜 외상으로 희망을 샀는가

‘빚투’는 돌출된 일탈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상적인 삶의 경로가 봉쇄된 사회에서 나타난 절박한 선택이었습니다. 한 세대는 일찍이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절약해도 자산을 형성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요. 서울의 집값은 연봉의 수십 배를 훌쩍 넘었고, 정규직 일자리는 줄어들었습니다. 대신 플랫폼 노동과 비정규직이 삶의 기본 형태가 되었습니다. 취업을 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 이 현실에서, 사람들은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감각에 불을 지폈습니다. 은행 이자는 바닥을 기었고, 시장에는 수많은 투자 수단이 넘쳐났습니다. 그러나 그 투자들은 설명보다 유혹이 먼저였고, 가상화폐는 그중에서 가장 강렬한 감정의 표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현실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절망 속에서 뛰어들었습니다.

투기와 투자의 경계는 누가 결정하는가

금융 시스템은 이 절박함을 알아챘고, 그 감정을 활용했습니다. 가상화폐 거래소는 거의 규제되지 않은 채 급성장했고, 유튜브와 소셜미디어는 일확천금의 신화를 확대 재생산했습니다. 고위험 금융 상품들은 안전장치 없이 유통되었고, 누구도 묻지 않았습니다. “이 선택이 감당 가능한가?”, “이들에게는 충분한 교육이 있었는가?” 아무도 묻지 않았습니다. 자본은 선택을 부추겼고, 실패의 책임은 고스란히 개인의 몫이 되었습니다. 실패한 이들은 조롱과 낙인의 대상이 되었지만, 정작 그 선택을 가능하게 만든 구조는 성찰되지 않았습니다. 이 구조가 유지되는 한, 또 다른 빚투는 언제든지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책임은 구조에 있다

이 사태의 책임은 결코 개인의 탐욕에만 있지 않습니다. 정부는 부동산과 자산의 양극화를 방치했고, 교육은 금융 리터러시를 제대로 길러내지 못했습니다. 사회는 정당한 노동의 가치를 점점 퇴색시켰고, 언론은 고수익 사례만을 부각시켰으며, 플랫폼은 수익 구조를 위해 고위험 상품을 전면에 배치했습니다. 이 모든 구조가 절망을 상품화하고, 희망을 투기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어떤 사회가 이들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가

이제 필요한 것은 절망의 반복을 끊는 일입니다. 사회는 빚투에 뛰어들었던 이들을 비난하거나 외면하기보다, 그들의 선택이 만들어진 배경을 직시하고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어야 합니다.

첫째, 노동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단순한 고용률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미래를 보장하는 안정된 일자리와 합리적인 보상, 그리고 비정규직의 권리 보호가 절실합니다.

둘째, 공정한 금융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고위험 상품에 대한 사전 규제를 강화하고, 투자 전 교육을 의무화하며, 금융기관의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셋째, 자산 불평등을 완화하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무주택자 중심의 주거 안정 대책, 청년을 위한 기본자산제, 부의 세습을 막기 위한 세제 개편 등이 그 일부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패한 사람들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는 사회적 인식의 전환입니다. 그들은 무모했던 것이 아니라, 너무 늦게 출발한 사회에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묻습니다, 희망은 무엇인가

희망은 자산의 그래프가 우상향하는 곡선이 아닙니다. 희망은 설령 추락하더라도 다시 복원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그 믿음을 가능하게 해주는 구조와 태도입니다. 빚으로 희망을 샀던 이들에게 사회는 되묻는 성찰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먼저, 그들의 절망을 빚으로 끌어다 쓴 건 아니었는가. 그 질문 끝에서야 비로소, 희망은 실체를 갖게 됩니다.

희망은 나눌 때 자랍니다. 그렇게 자란 희망만이, 절망을 넘어서는 진짜 자본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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